설 립 자
설 립 자
송현(松賢)
백충현(白忠鉉)
1939.03.22~2007.04.11
수상
• 2004년 홍조근정훈장
약력
• 국제법학자
•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 서울대학교 대학원 원장
• 대한법학회 부회장
• 서울국제법연구원 이사장
• 대한국제법학회 회장
• 국제중재재판소 재판관
송현(松賢) 백충현(白忠鉉)
1939.03.22~2007.04.11
수상 • 2004년 홍조근정훈장
• 국제법학자 •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 서울대학교 대학원 원장 • 대한법학회 부회장 • 서울국제법연구원 이사장 • 대한국제법학회 회장 • 국제중재재판소 재판관 |
고 송현 백충현 선생(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은 1984년 당시로서는 거액의 사재를 들여 서울국제법연구원을 설립하고, 학자들이라면 목숨 다음으로 아끼는 자신의 모든 장서를 서울국제법연구원에 기증하고 이를 공개하였다.
국제법에 관한 한 백충현 선생의 장서는 당시 국내 최고 수준이었기 때문에, 수많은 후학들이 서울국제법연구원의 시설과 장서를 이용하여 국제법 연구자 또는 실무가로서의 길을 갈 수 있었다.
송현 백충현 선생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수학하고 1968년에 서울대학교 교수로 부임한 후 40여년 가까이 국제법연구자로서 일업정진을 한 학자였다.
광복 후 한국의 1세대 국제법학자인 이한기 교수의 지도 아래 공부를 시작한 백충현 선생은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가 당면한 국제법적 도전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평생 동안 진력을 다하였다.
백충현 선생은 1974년 문세관 사건을 계기로 국내 최초로 범죄인 인도에 대한 이론적 연구를 시작하였으며, 스승이었던 이한기 교수의 필생의 학문적 관심이었던 독도 문제에 대한 연구 성과를 한 차원 높이는 일에 진력하였다.
독도문제에 대한 우리의 민족감정적 접근을 늘 안타깝게 여기고,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사실을 국제사회에 설득하는 데 필요한 학문적 축적을 묵묵히 진행하였다. 필요한 자료를 찾기 위하여 일본 땅 구석구석은 물론 교황청을 비롯한 유럽의 수많은 고문서관을 방문하였다.
그러면서도 선생은 독도에 관한 논문을 섣불리 발표하려 하지 않았다. 설익은 공개가 국익에 도움이 될 리 없다는 확신 아래 그는 문제가 터질 때마다 뒤에서 조용히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이론적 대응책을 조언하였다.
강화도 외규장각 서책 반환을 국제법적 문제로 본격적으로 부각시킨 것도 백충현 선생이었으며, 일제의 조선 병탄 과정에서의 각종 강박조약의 체결절차상 숨겨져 있던 법적 하자를 발굴한 이도 선생이었다. 선생은 이러한 작업을 진행할 때마다 늘 사학계와 협의를 게을리 하지 않으며 원본자료의 발굴과 정확한 역사해석을 놓치지 않으려 하였다.
백충현 선생은 단지 학자로서만의 일생을 살지는 않았다. 서울대학교 대학원장, 법과대학장, 평의원회 의장, 교무처장 등 수많은 행정직을 맡아 대학 운영에 헌신하였다.
또한 대한국제법학회 회장, 국제인권법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는가 하면, 한국인 최초로 유엔 아프가니스탄 특별보고관(사무차장급)으로 임명되어 포연이 난무하던 현장을 누비기도 하였다.
[참고자료]
• 이충렬, 『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김영사, 2017)
• “송현 백충현 교수 연보, 주요 저작,” 『서울대학교 법학』, 제45권 제3호(2004), pp.xi-xviii.
• 정인섭·이근관, “백충현 교수 정년기념 대담,” 『서울대학교 법학』, 제45권 제3호(2004), p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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